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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황희, '나는 탄핵한다'

오늘의 국가적 재앙은 모두 그로부터 시작되었다.

아임뉴스-우리가 언론이다. 시민 기자단! |

 

지난 대선에서 참으로 믿기 어려운 일이 벌어졌다. 차마 받아들일 수 없는 기막힌 일이 현실이 된 것이다. 

 

'깡패 검사'가 일국의 대권을 거머쥐고 '유흥업소 출신의 탬버린 전공자'가 영부인이 되었다.

이 모든 배후에는 사이비(似而非) 향원(鄕原) '문재인'이 있었다. 

 

분노는 가라앉지 않았고

상처는 치유되지 않았다. 

 

나는 여전히 역사의 법정에서 문재인을 탄핵하고 싶다. 

오늘의 국가적 재앙은 모두 그로부터 시작되었다. 

 

[나는 탄핵한다]

 

1.

오래 묵은 생각이다.

팬덤 정치가 갈수록 심화되어 우리의 정치지형이 진영 논리로 양분화된 것은 반도 근성을 지닌 편방 민족의 고질적 불행이다. 

 

최근에 SNS를 통해 진보성향을 가진 어느 목사의 글에서 ‘이재명을 찍는 자는 천국 갈 것이고 윤석렬을 찍는 자는 지옥 갈 것이다.’라는 글을 보고 그의 수준 됨을 의심하였다. 평소에 그의 글을 애독하던 사람으로서 매우 실망스러웠다. ‘이재명을 지지하면 애국자이고 윤석렬을 지지하면 매국노다.’라거나 ‘이재명은 선이고 윤석렬은 악이다.’라고 하는 선악 이분법은 지나친 편견이다. 이는 지극히 주관적인 해석일 뿐만이 아니라 정치의 본질을 이해하지 못하는 매우 위험한 발상이다. 소위 팬덤 정치에 자신의 영혼이 종노릇 하는 행위에 불과하다.

 

국정 교과서와 관제 언론에 세뇌되어 역사 인식에 심각한 왜곡을 초래하고 있는 극우 ‘태극기부대’와 문재인 보유국임을 자처하는 ‘대깨문’의 역사 인식은 둘 다 극단적 편향에 치우쳐 균형을 잃었다는 점에서 동일한 수준이다. 편견에 갇히거나 편향에 치우치면 사물과 사건을 자신이 보고 싶은 대로만 보게 된다. 자기 성찰에 대한 분별력을 잃게 될 뿐만이 아니라 내 편은 무조건 옳고 상대는 무조건 잘못이라는 독단의 도그마에 빠지는 우를 범하게 된다. 

 

2.

자연인 문재인은 자신의 정치 참여를 ‘운명’ 이라고 했다.

노무현 대통령이 김인규와 우병우 등 일군의 검찰 집단에게 조리돌림을 당하며 참담한 수모를 겪던 시절의 울분과 그의 죽음을 곁에서 지켜보아야만 했던 때의 좌절감으로 그가 현실정치의 참여를 ‘자신의 운명’으로 받아들였을 때, 나는 그가 친일 단죄와 함께 검찰개혁과 적폐 청산을 이루어낼 정의의 수호자이며, 그의 정치 참여야말로 민족의 ‘역사적 운명’이라는 것을 믿어 의심치 않았다. 

 

나는 그가 이 사회의 부조리한 개혁을 위해 기득권 세력과 맞서다 만신창이가 되어 상처투성이로 미완의 임기를 마친다 할지라도 그는 우리의 영웅으로서 역사 속에 영원히 기억될 것으로 굳게 믿었다.

 

3.

나는 한때 문재인을 ‘절대 선’이라 착각한 적이 있다. 추운 겨울날 광화문에서 촛불을 들고 그의 ‘운명’을 ‘역사의 운명’이라 굳게 믿으며 가난한 통장을 깨서 그를 열심히 후원하였다. 대통령이 되면 청와대를 국민에게 돌려주고 대통령 집무실은 종합청사로 이전하겠다거나 광화문에서 서민들과 소주잔도 기울이며 자주 소통하겠다는 실현 불가능한 터무니없는 공약을 보고서도 이미 진영 논리에 매몰되어 보고 싶은 대로 보고 믿고 싶은 대로 믿어버렸다.

 

임기가 시작되어 화려한 기념식과 의전 정치로 지지율이 하늘을 찌를 듯해지자 언제부터인가 자신의 신념은 ‘개혁’이 아닌 ‘지지율’로 바뀌었고 ‘소통’은 ‘고집’으로 변하고 말았다. 마침내 ‘정의’와 ‘지지율’이 충돌하고자 할 때, 그는 ‘정의’를 버리고 ‘지지율’이라는 사적 욕망을 택하였다. 

검찰총장의 ‘임기보장’이라는 小義에 집착하여 ‘검찰개혁’이라는 大義를 잃어버렸으며, ‘절차적 정당성’이라는 명분에만 집착하여 ‘적폐 청산’이라는 시대정신을 망각하고 말았다. 

 

그는 촛불 정신을 계승한 것이 아니라 노무현의 친구라는 단물을 빨아먹은 것이다. 애당초 그에게는 개혁을 위한 비전이나 계략이 존재하지 않았다. 그의 운명은 사기였다. 

 

4. 

그의 대표적 실정으로 분류되는 인사 정책의 실패는 안목의 부재에 의한 ‘무지’나 ‘무능’만이 아니었다. 더 큰 잘못은 위기 상황을 대처하지 못하고 방관한 ‘무책임’에 있다. 그는 실패한 인사에 대해서 자신의 무능을 결코 인정하지 않았을 뿐만이 아니라 위기와 혼란을 자초하고서도 사태 수습을 위하여 누구를 경질한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 

 

윤석렬, 최재형, 김동연 등은 노골적으로 대놓고 반기를 든 자들이었고 유은혜, 김현미, 홍남기, 박범계 등은 무능의 상징이었으며 김명수, 김진욱, 김오수 등은 무책임의 극치를 보여주었던 인사였다. 어느 한 사람도 자신에게 온전하게 충성하는 놈이 없었다. 조국의 멸문지화에 방관하는 그를 보면서 누구도 그를 위한 모험을 하지 않은 것이다. 모두가 기회주의와 보신주의로 립서비스나 남발하며 자신의 이미지 관리에만 열중하였다.

 

5.

그는 ‘갈등 조정’ 능력이 전혀 없는 매우 비겁한 리더였다. 이른바 ‘착한아이증후군’에 빠져서 생래적으로 누구에게도 싫은 소리를 못한다. 그저 좋은 사람 착한 사람이라는 이미지만을 갖고 싶어 했을 뿐이다.

 

조국 장관 인사청문회 당시 자신이 임명한 장관을 검찰총장이 수사 한 번 하지 않고 밤 12시 생방송 도중에 전격 기소해버린 희대의 사건이 발생하였다. 이는 명백한 항명이며 하극상이다. 이성과 상식이 살아있는 건강한 국가라면 윤석열이 주동한 ‘검찰 난동’은 형법 87조 국헌문란의 국사범으로 긴급체포하고 구속 수사해야 옳았다. 대통령의 인사권을 정면으로 거역하고 파괴한 행위는 본질적으로 내란죄에 해당한다. 헌법에 의하여 설치된 국가 기관(대통령)을 전복 또는 그 권능 행사(인사권)를 불가능하게 한 것은 명백한 국헌문란이다.

 

조국 일가가 멸문지화의 능욕을 당하고 있는데도 검찰총장에게 “나는 윤석렬 총장을 여전히 신뢰한다.”라고 하고 조국 장관에게는 ‘나는 그에게 빚이 있다.’라는 해괴한 망발을 하였다. 두 사람 모두에게 싫은 소리를 못한 것이다. 모두에게 좋은 사람의 이미지로만 남고 싶은 것이다. 사태의 심각성이 이러했음에도 팬덤 정치에 종노릇 하는 대깨문들은 ‘문통에게는 빅픽쳐가 있다’거나 ‘우리는 문재인 보유국’이라며 비판 세력의 입을 원천 봉쇄하였다. 

 

나는 차라리 박근혜처럼 ‘나도 속고 국민도 속았습니다.’라고 대국민 호소를 한다거나 채동욱 사례처럼 범죄사실을 입증하여 파면을 시키거나 김영삼처럼 ‘독불장군에게는 미래가 없다’라고 일갈하거나 하는 등의 여러 가지 방법으로 얼마든지 문책하고 경질할 수도 있었음에도 그는 끝까지 갈등 해소에 미온적이었다. 

 

최성해가 학력 위조로 27년간 총장을 해먹은 범죄행위에 대해서도 문제조차 삼지 않았다. 검찰은 공소시효가 지났다고 하지만, 총장의 임기는 3년이며 3년마다 재임용되는 과정을 거쳐야 하기 때문에 그의 공소시효는 아직도 여전히 유효하다. 법률 적용의 형평이 이러함에도 행정부의 수반은 모르쇠로 일관하고 교육부 장관을 문책조차 하지 않았다. 끝내 오불관언으로 일관하고 만 것이다.

 

6. 

5선의 국회의원이며 당 대표까지 지냈던 총리급 추미애에게 법무부 장관은 애초에 체급에 맞지 않는 자리였다. 윤석렬의 패악질이 두려워 아무도 맡지 않으려는 자리에 등 떠밀어 올려보내 놓고 그녀가 고군분투하며 결사 항전으로 사선을 넘나들 때 문재인과 민주당은 모두 방관으로 일관하였다. 

 

대통령은 겨우 2주짜리 징계안에도 자신의 손에 피 묻히기를 주저하여 주무 부처에서 올라오는 결재에 형식적으로 사인만 하겠다는 태도를 보였다. 오히려 “윤석렬은 문재인 정부의 총장이다.”라며 두둔하기까지 하는 기괴한 퍼포먼스를 연출하였다. ‘윤석렬을 키운 것은 문재인이다’라는 프레임에 갇히기 싫어 오히려 그녀를 사지에 내몰고서는 ‘윤석렬을 키운 것은 추미애다’라는 프레임에 걸리게 한 것이다. 자신은 끝까지 착한 사람이라는 좋은 이미지로 남고 싶은 것이다. 

 

7.

이재용을 방면할 때도 국민적 분노를 의식하여 박범계를 앞세워 장관의 권한인 ‘가석방’으로 자신의 의지를 위장하였다. 구테타를 일으킨 반역자 노태우에게 ‘국장’이라는 영예를 안겨주어 온 국민을 수치스럽게 만들더니 정작 자신은 국장에 참여하지 않았다. 국무회의 의결이었기 때문에 자신의 의지와는 무관하다는 이미지를 연출하고 싶은 것이다. 

 

이미 박근혜를 ‘사면’ 시키기로 작정하고 나서 그의 의중을 알아차린 이낙연이 선점효과를 보려다 국민에게 뭇매를 맞는 것을 보고서는 자신은 그런 의지가 전혀 없는 것처럼 표정 관리에 열중하였다. 선거가 임박해지자 국민적 동의 절차도 없이 느닷없는 기만전술로 적폐의 원죄를 기어이 사면해주고야 말았다.

 

8.

이번 대선 과정에서 대통령은 소위 친문 세력들의 반발을 잠재우며 후보자에게 ‘나를 밟고 가라’라는 열린 자세로 자신의 정책을 마음껏 비판할 수 있도록 이재명에게 길을 열어 줬어야 했다. 

 

그러나 그는 끝내 자신의 추종 세력들의 반발을 막지 않았으며 이미지와 지지율 관리에만 열중하였다. 당내의 친문 세력마저도 선거운동에 매우 수동적이고 미온적이었다. 이재명은 가장 열악한 조건 속에서 단기필마로 47.8%의 기적을 일구어낸 것이다.

 

9.

남자로 태어났다고 해서 모두가 다 신사의 모습으로 죽는 것은 아니다. 남자로 태어나는 것은 하늘의 ‘운명’이지만 신사로 죽는 것은 끊임없는 자기 '검열’이 필요한 법이다. 그는 신사의 모습으로 정치를 시작했지만, 비겁한 리더의 모습으로 정치무대를 내려오게 되었다. 나는 그에게서 이제 더 이상 신사의 모습을 발견할 수가 없다. 나의 눈에 그는 무능하고 무책임한데다 비겁한 리더로서 고집불통의 모습만을 각인시켰을 뿐이다.

 

그가 재임 기간에 유례없는 성공을 거둔 것은 오직 자신의 지지율뿐이다. 탄핵 정국이라는 유리한 정치적 지형과 촛불 민심이라는 강력한 지원을 등에 업고도 겨우 41%의 지지율로 대권을 거머쥐었지만, 퇴임 시의 지지율은 오히려 45%에 달하는 사상 초유의 일을 이루어 낸 것이다. 

 

체면과 이미지를 중시하며 ‘좋은 게 좋은 거’라는 식으로 누구와도 원수 맺지 않겠다는 그의 립서비스 형 인간 관리가 성공한 것이다. 정치인의 길보다는 연예인의 길을 택한 셈이다. 연예인에게는 ‘인기’가 생명이겠지만 정치인은 ‘명분’이 생명이다. 연예인이야 좋은 게 좋은 것이라며 현실적 인기에 영합할 수밖에 없겠지만 정치인은 ‘옳은 것이라야 좋은 것이다.’라며 후세에라도 역사적 평가를 받겠다는 결기가 있어야 한다.

 

10.

사람은 누구나 살아가면서 개인적으로 누구도 미워하지 않겠다는 목표를 세울 수 있다. 그러나 누구에게나 다 좋은 사람으로 평가받겠다거나 어느 누구에게도 욕을 먹고 싶지 않다는 목표는 실현 불가능한 허상에 불과하다. 그것은 자신을 기만하는 일종의 자기 최면술이며, 자기의 허상을 구현하려는 과대망상일 뿐이다. 인간사는 그럴 수도 없고 그래서도 안 된다. 

 

‘진리’가 ‘다수결’이 아닌 것처럼 ‘정의’ 또한 ‘인기순’이나 ‘지지율’로 결정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남들의 평가에 의한 지지율이나 이미지만을 의식하여 체면에 연연하는 인생은 孔子가 그토록 미워하며 이단으로 정죄하였던 교언영색(巧言令色)하는 ‘향원(鄕原)’에 불과한 사람일 뿐이다.

 

어쩌면 우리가 말하는 ‘착한 사람’이란 광고 속 이미지와 같은 허상에 불과할지 모른다. 중요한 것은 ‘착한 사람’이라는 이미지를 얻는 것보다 ‘옳은 일을 한 사람’이라는 실제적 경험을 갖추는 것이 훨씬 더 소중한 일이다. 우리의 판단 또한 착한 사람일 것이라는 이미지에 현혹되어 실체가 없는 감정적 판단을 할 것이 아니라 옳은 일을 한 실제적 경험을 바탕으로 실증적 판단을 해야 옳은 것이다.

 

옳은 일을 한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사회적 평판이나 도덕적 비난을 두려워해서는 안 된다. 정의로운 자에게는 좋은 사람이라는 평을 받아야 하고 불의한 자에게는 나쁜 사람이라는 평을 받는 것이 옳다. 굳이 도둑질하고 있는 놈에게까지 고맙다는 소리를 들어야만 하겠는가?

 

11.

나는 오늘 실패한 대통령 문재인을 탄핵한다. 

내가 그를 지지하고 열광했던 것은 개혁을 위해 ‘십자가’를 져야 하는 그의 ‘박해’와 ‘고난’ 때문이었지 기념식장에서 의전 정치하며 ‘성군놀이’하는 ‘영광’ 때문이 아니었다. 

 

퇴임 후 봉하마을 너럭바위 앞에서 가슴 치며 통곡하는 염치없는 짓거리는 제발 하지 않기를 바란다. 귀하는 김대중과 노무현의 계보를 이을 재목이 아니었다.

친구의 죽음 앞에서 자신의 십자가를 ‘운명’처럼 지고자 했던 내가 알던 문재인은 이미 죽었다. 

 

정조 이후 200여 년 동안 진보 개혁 세력에게 문재인 정부만큼 막강한 권한을 가졌던 적이 일찍이 있었던가? 180석의 의회 권력까지 몰아준 국민에게 문재인 정부는 너무나 무기력하고 무책임하였다. 앞으로 더 철저히 부서지고 좌절해야 한다.

 

국민의 피눈물 나는 개싸움과 촛불 정신으로 하나가 되어 만들어준 ‘천재일우’의 기회를 허망하게 날려버린 귀하는 더 이상 ‘운명’을 논하던 그 옛날의 문재인이 아니었다. 자신이 임명한 부하의 항명과 반란에 힘 한번 써보지 못하고 좌고우면하며 눈치나 보다가 체면과 지지율만을 염려하여 보신으로 일관한 비겁한 리더의 전형이었다. 

 

그저 5욕 7정의 세속적 욕망에서 자유롭지 못한 한낱 필부에 지나지 않았으며, 착한아이증후군에 빠져 결정장애를 앓고 있는 ‘정치적 미숙아’에 불과하였다. 

 

12.

윤석렬의 검란 이후 자신이 임명한 부하의 만행으로 국헌을 문란케 하여 국민을 분노와 절망으로 화병을 나게 한 책임은 누가 질 것이며, 일개 깡패 검사에 불과하였던 그에게 오늘이 있도록 키워준 책임은 누가 질 것이며, 앞으로 5년간 국민이 겪게 될 치욕과 수모와 좌절의 책임은 누가 져야 할 것인가?

 

나는 이 일에 가장 큰 책임이 문재인 씨에게 있다고 단언한다. 귀하는 이 절망과 좌절의 사태에 대해 마땅히 가장 무거운 책임을 지고 석고대죄하며 역사와 국민 앞에 사죄해야 한다.

정치인이 국민을 지켜 줘야지 국민이 정치인을 지킨다는 게 말이 되는가? 

자신의 사적 욕망으로 권력을 추구하고자 하는 정치 모리배들이 과연 인간문화재란 말인가? 천연기념물이란 말인가?

 

어찌 엄동설한 추위 속에 국민을 내몰아 개싸움을 시키는가? 개싸움은 정치를 하고자 하는 그대들의 몫이 아니었던가? 위대한 국민의 단결된 힘과 촛불의 함성으로 세워진 정부가 탄핵을 당했던 적폐 세력에게 겨우 5년 만에 도로 정권을 갖다 바친 이 역사의 비극을 도대체 무엇으로 변명할 것인가?

 

13.

이재명이 싫어 윤석렬을 찍었다는 ‘깨시연’들과 아직도 문재인 보유국이라는 미망에 사로잡힌 ‘대깨문’들과 우리 주군은 무오류의 인생이라고 굳게 믿으며 팬덤 정치의 종노릇 하는 ‘광신도’들에게 大學의 명언을 첨언 하고자 한다.

“좋아하더라도 그의 나쁜 점을 알아야 하며, 미워하더라도 그의 좋은 점을 알아야 한다.” 

- 好而知其惡, 惡而知其美.

 

霞田 拜拜

 

落張;

먹고사니즘이 불가피하여 당분간 페북을 쉬고자 하였는데 뱃속에서 마그마가 분출하여 견딜 수가 없어 넋두리를 몇 자 쏟아냅니다.

 

不入;

정치적 견해가 다르신 분들은 굳이 시비를 가리려 에너지 낭비하지 마시고 걍 스팸 취급하시면 됩니다. 민주주의는 다양성의 존중이 최상의 가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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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건환 기자

시공간 속의 여러 사건과 사고들은 누군가의 매체에서 전달 된다. 그러나 과연 여러 사슬망과 얽혀 있는 기존 매체의 보도 현실에서 정론을 기대할 수 있을까! 아임뉴스는 이 논점에서 부터 시작하는 SNS 매체로서 인터넷 언론 리딩을 지향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