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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1월26일 오후 3시, 천도교 중앙대교당에서는 평화운동, 통일운동 단체의 대표자와 활동가, 원로 등이 참여한 가운데, ‘평화와 통일을 위한 원탁회의’가 개최되었다. 천도교의 통일운동 전위 단체인 동학민족통일회와 동학실천시민행동의 공동 제안으로 진행된 원탁회의에는 이우재 전)국회의원, 김순권 국제 옥수수 재단 이사장, 이남영 서울대 철학과 명예교수, 이래경 다른백년 이사장, 진천규 통일TV 대표 등 50여 명이 참가하여 제안서를 포괄적으로 승인하고 공동의 행동을 결의하였다.
동학실천시민행동 안승문 상임대표의 사회로 진행된 1부는 개회 선언과 참석자 소개에 이어, 전)통일농수산포럼 상임공동대표였던 이우재 전 국회의원의 여는 말씀, 동학민족통일회 노태구 대표 상임의장의 취지 설명과 동학실천시민행동 이요상 상임공동대표의 제안문 낭독이 이어졌다. 2부와 3부에서는, 북한의 옥수수 생산력 향상에 크게 기여한 국제 옥수수재단 김순권 이사장의 남북 교류협력 전략, 정상모 전 MBCㆍ한겨레신문 논설위원의 홍보 전략, 장영달 전)국회 국방위원장의 DMZ 돌파 전략 등에 대한 제안과 참가자들의 자유 제안 시간이 이어졌다.
4부에서는 원탁회의 제안문과 취지문에 담긴 내용들을 포괄적으로 승인하고, 민간이 주도하는 평화와 통일을 위한 거대한 공동행동을 추진하기 위해 준비위원을 좀 더 폭넓게 모집하고, 도전(정책)ㆍ언전(홍보), 재전(재정)ㆍ국내외 조직, 문화 예술, DMZ 접근 전략 등의 분과(팀)를 구성하여 구체적인 행동을 준비하는 것을 포함하여 아래와 같이 결의했다.
1. 2023년 3월1일에 통일선언문, DMZ인간 띠잇기 등 구체적이고 강력한 행동을 준비한다.(제안문)
1. 2차 준비위원을 폭넓게 모집하며, 준비위원들은 10만원 이상의 후원금을 납부하기로 한다.
1. 준비위원의 희망에 따라 분과(팀)를 구성하고, 2주 후(12월 9일)에 분과위원 전체 회의를 개최한다.
1. 원탁회의 결과를 정리해 보도자료로 만들어 널리 배부한다.
1. 2차 원탁회의 등 후속 활동과 일정은 분과를 구성해 가면서 확정한다.(뒤풀이에서 결의)
원탁회의 참가자들은, 남북미 당국 간 소통이 완전히 중단되고 한미일 연합 군사훈련과 북의 미사일 발사 등 갈등과 대결이 격화되고 있는 상황이 남북 모두를 공멸시킬 전쟁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위기의식에 공감했다. 따라서, 전쟁으로 민족이 공멸하느냐 평화와 상생의 시대를 여느냐를 좌우할 엄중한 상황을 정치지도자들의 결정에만 맡기고 있어서는 안 되며, 민간이 가진 집단 지성, 인적 물적인 역량을 모두 모아 평화와 통일의 시대로 가는 돌파구를 열어가자고 결의했다.
이 날 원탁회의 참가자들은 70여 년 전까지 형제 자매로, 친구와 친지로 지냈던 남과 북의 동포들이 냉전 체제의 대결구조 속에서 분단되어 소통이 불가능한 시대를 살아왔으나, 이제 최소한 통신ㆍ통행 ㆍ통상 등 3통(3通)은 자유롭게 할 수 있는 시대를 열어야 하며 그것은 기존의 장벽을 뛰어넘기 위한 결연한 의지와 단호한 행동이 없이는 이루어질 수 없다는 문제의식으로, 정전협정 70주년이 되는 2023년 3월1일에 남ㆍ북ㆍ해외의 동포는 물론 세계 평화를 열망하는 영향력 있는 인사들까지 함께하는 DMZ 인간 띠잇기 행사를 조직하자는 데 공감했다.
더 나아가 전쟁의 파국을 막고 갈등과 대결의 시대에 종지부를 찍으며, 무력과 패권이 지배해 온 국제질서를 평화와 공존 공영이 보장되는 새로운 국제질서로 바꾸어내는 일까지 할 수 있어야 하며, 그와 같은 일을 ‘홍익인간과 인내천 정신’을 바탕으로 우리가 앞장서서 제안하고 주도하지 못할 것이 없다는 문제의식에도 공감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국내의 평화ㆍ통일운동 단체들은 물론 세계 각국의 한인 네트워크와 한류 문화에 열광하는 한류 팬들까지도 참여할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기획하고 추진해 보자는 결의를 다졌다.
이 날 원탁회의가 열렸던 천도교 중앙대교당은 천도교 3대 교주 의암 손병희 성사의 주관으로 1918년에 공사가 시작되어 1921년에 완공된 건물로, 전국의 천도교 교인(동학인)들로부터 성금을 모아서 공사비를 충당하였고 남은 돈은 3·1운동 거사와 상해 임시정부 활동 지원에 사용하였다. 지붕 옆면이 사람 인(人)자 모양인 맞배지붕집이다. 당시에는 서울시내 3대 건물의 하나로 꼽혔다.(국가문화유산 포털 참고) 일제가 물러가고 미군정이 시작된 1945년 11월에 귀국한 김구 주석은 귀국 즉시 천도교 대교당에서 귀국 연설을 하면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천도교가 없었다면 3․1운동이 없었고, 3․1운동이 없었다면 이 대교당이 없고, 이 중앙대교당이 없었다면 상해 임시정부가 없고, 상해임시정부가 없었다면 대한민국의 독립이 없었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