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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일반

틀렸다. 신라 우산국은 울릉도가 아니다. 원서로 보는 위치. 한국사 수정 불가피

아임뉴스-우리가 언론이다. 시민 기자단! |

 

틀렸다. 신라 우산국은 울릉도가 아니다. 원서로 보는 위치. 한국사 수정 불가피  

 

 

1. 문헌 사료에 기록된 신라 ‘우산(于山)국’ 사건

한국 고대사의 여러 쟁점 가운데,

신라 우산국(于山國)을 둘러싼 논의는 단순한 지명 비정(比定)의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우리가 고대사를 어떤 공간 인식 위에서 이해해 왔는가,

그리고 그 해석이 과연 세계사적·과학적·논리적 기준을 충족하는가를 묻는 문제다.

 

본 글은 <삼국사기>와 <고려사>에 기록된 2개의 우산국 사건

① 신라 이사부의 우산국 정복(512년)과

② 고려 현종대 여진의 우산국 침입과 구휼(1018년)을 대상으로,

 

*‘설명비용(explanatory cost)’이라는 논리학적 기준을 적용해 기존의 한반도 울릉도 중심 해석과

중국 대륙 중심 위치 해석을 비교 분석하고자 한다.

 

*설명비용: 가설을 증명하기 위해 필요한 군더더기 논리

 

1) 사료가 말하는 신라 ‘우산국’ 사건

<삼국사기> 신라본기는 다음과 같이 기록한다.

“우산국은 명주(溟州) 동쪽 바다 가운데 섬이다.

산세가 험하여 복속하지 않았다.

신라 이사부 장군이 전함에 목각 사자를 싣고 위협하니 항복하였다.”

 

2) 사료가 말하는 고려 ‘우산국’ 사건

<고려사> 고려 현종 9년(1018)에는 다음과 같은 기록이 보인다.

“우산국이 동북 여진의 잦은 침입으로 농사를 짓지 못하자,

고려가 이원구를 보내 농기구를 증정하여 구원하였다. ”

 

위 기록의 해석으로  ‘우산국’을 울릉도로 비정한다.

 

그러나 이 해석이 과연 사료 외부의 현실 조건

'해양기술, 군사 논리, 병참과 행정'과도 적합한지는 별도의 검토가 필요하다.

 

 

2. 한반도 울릉도 비정의 설명비용

(1) 해양기술의 문제

6세기와 11세기는 모두 대항해시대 이전이다.

세계사적으로 이 시기 동아시아의 해양활동은 *연안해양술(coastal navigation)*이 주류였으며,

나침반의 실용화와 원양 항해 체계는 송나라, 원나라 시대 이후에야 본격화된다.

울릉도는 한반도 동해안에서 약 170km 떨어진 외해 도서다.

이를 전제로 할 경우, 다음과 같은 추가 가정이 필요해진다.

 

신라와 고려가 원해 항해 능력을 체계적으로 보유했는가

풍랑과 해류를 극복할 기술·경험이 있었는가

그러한 위험을 감수할 행정·군사적 동기가 충분했는가

사료는 이에 대해 아무 설명도 제공하지 않는다.

그 공백을 메우기 위해서는 다수의 가정이 필요하며, 이는 설명비용의 급격한 상승으로 이어진다.

 

(2) 군사·경제 논리의 문제

특히 고려사 기록에서 여진족이 울릉도까지 건너가 농기구를 약탈했다는 해석은

군사·경제적으로 설득력이 낮다.

여진은 기마병 중심의 육상 세력이었으며, 농기구는 장거리 해상 원정의 위험을 감수할 만큼

고부가가치 약탈 대상이 아니다.

 

(3) 고려의 구휼 행정 문제

고려 조정이 외해를 건너 농기구를 반복적으로 지원했다는 가정 역시,

정기적 원양 수송 체계와 고위험 행정 능력을 전제로 한다.

이 또한 사료에 근거하지 않은 추가 가정을 요구한다.

 

3. 중국땅 동부 대륙 ‘우산’ 해석의 설명비용

반대로, 우산국을 산동반도의 ‘우산(于山)’ 지명으로 재배치하면 상황은 달라진다.

 

 

 

 

여진의 침입은 육로 또는 연안 이동으로 설명 가능

농기구 약탈은 접경 농촌에서 흔한 전근대 약탈 양상

국가의 구휼은 일상적 행정 행위로 자연스럽게 이해됨

대양해양술, 고위험 원정이라는 가정이 불필요

즉, 사건을 성립시키기 위해 추가로 가정해야 할 요소가 거의 없다.

 

4. 설명비용 비교표

 

 

 

 

 

 

5. 결론 : 역사 해석, 위치의 문제가 아니라 논리의 문제

 

이 논의는 특정 역사 해석의 다름을 선언하기 위한 것이 아니다.

핵심은 단순하다.

어느 해석이 더 많은 가정을 요구하는가?

어느 해석이 세계사적 상식과 충돌하지 않는가?

 

설명비용이라는 논리학적 기준에서 볼 때,

대륙 우산 해석은 훨씬 적은 가정으로 사료를 설명한다.

이는 대륙에서의 역사 해석이 ‘확정된 진실’이라는 뜻이 아니라, 현재까지 제시된 여러 해석 중 논리적으로 더 우월한 연구 가설임을 의미한다.

 

대륙사관의 한계 —중국 대륙 지역 고고학 연구의 제약—는 분명 존재한다.

 

그러나 이는 곧바로 그것이 음모나 허구라는 결론으로 이어지지 않는다.

오히려 향후 검증되어야 할 정당한 학문적 과제다.

한국 고대사 연구는 이제 “어디가 주류 해석인가”가 아니라,

“어느 설명이 더 자연스럽고 비용이 적은가”를 묻는 단계로 나아가야 한다.

우산국 논쟁은 그 전환을 요구하는 하나의 분명한 사례다.

진실은 감정이 아니라, 결국 논리와 증거의 축적 위에서 드러난다.

 

 

 

 

 

 

글 : 고려 삼국 역사복원 협회. 명예 홍보이사. 미국 교포 CJ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