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임뉴스-우리가 언론이다. 시민 기자단! | “와~~~~~~~~~. 와~와~.” 2022년 5월 5일. 오후 4시경 호원동 산 35-2. 도봉산 중턱에는 신박신박 신동명 박사의 함성으로 가득 찼습니다. 백제 초기 연질무문토기로 추정되는 토기 파편이 돌무더기 속에서 발견됐기 때문입니다. 함께 산에 오른 ‘진등친목회(김수원(72세), 강대성(61세), 정일삼(60세))’ 회원들도 신박사의 옥타브 높은 돌고래 발성에 같이 흥분하는 모습이었죠. 사람의 노력만으로는 될 수 없는 일, 조상님들의 은덕이 없이는 이룰 수 없는 일이 벌어지고야 만 것입니다. 우리를 흥분의 도가니로 몰아넣었던 그날의 사연은 이랬습니다. 우리가 의정부 ’회룡분지(回龍盆地)‘를 ‘하북 위례성(河北慰禮城)’이라 추정했던 이유 한 가지. 그건 의정부에 하남(河南)과 똑같이 ‘이성산성(二聖山城)’이라는 지명이 있다는 것 때문이었습니다. 같은 이름의 산성(山城)이 다른 지역에 동시에 존재한다는 것은 동일한 사건이 연속적으로 일어났다는 것을 추측할 수 있는 중요한 근거가 되니까요. 그리고 이 이론을 좀 더 발전시키면 ‘이성산성(二聖山城)’ 있다면 그 아래 마을은 ‘위례성(慰禮城)’이라는 합리적 추측이 가
아임뉴스-우리가 언론이다. 시민 기자단! | 호원동 산 55-1. 인천 소래를 거쳐, 부천 노고산을 거쳐, 마포나루를 거쳐, 마포구 할미산을 거쳐 은평구를 거쳐, 양주 장흥을 거쳐, 의정부 홍복산을 거쳐, 녹양동 버들개를 거쳐, 양주 어하고개를 거쳐, 포천 소흘읍 비득재를 거쳐, 남양주 별내면 용암리 비루개를 거쳐, 의정부 고산동 비루개를 거쳐 여황제 소서노와 그의 두 아들 비류왕자와 온조왕자가 나라를 세우기 위해 마침내 도착한 곳의 지금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부여한 현주소입니다. 그런데 왜? 소서노여제와 두 왕자들은 당시에 꽤나 먼 거리였을 이 길을 수많은 사람들까지 거느리고 이동을 해야만 했을까요? 그들의 주목적은 고인돌이 있느냐 없느냐를 확인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에게~. 겨우 그 이유 때문에 그 먼 길을 찾아다녔다고? 그렇습니다. 그들의 목적은 고인돌이 많은 지역이 어디냐를 찾고자 했던 겁니다. 고인돌이 뭔데 그 당시엔 어마어마한 이동 프로젝트를 감행해야 했던 걸까요? 그것은 고인돌이 있다는 것은 인간이 살기에 적합하다는 뜻이었기 때문입니다. 고인돌의 수가 많을수록 많은 사람들이 먹고 살 수 있는 자연환경이 조성되어 있다는 것을 미루어 짐작하게 하는 근거
아임뉴스-우리가 언론이다. 시민 기자단! | 23. 송화강 뱃노래 -김동환 새벽 하늘에 구름장 날린다. 에잇 에잇 어서 노 저어라, 이 배야 가자. 구름만 날리나 내 맘도 날린다. 돌아다보면은 고국이 천 리런가. 에잇 에잇 어서 노 저어라, 이 배야 가자. 온 길이 천 리나 갈 길은 만 리다. 산을 버렸지 정이야 버렸나. 에잇 에잇 어서 노 저어라, 이 배야 가자. 몸은 흘러도 넋이야 가겠지. 여기는 송화강, 강물이 운다야 에잇 에잇 어서 노 저어라, 이 배야 가자. 강물만 우더냐 장부(丈夫)도 따라 운다. (『삼천리』, 1935.3) <이해와 감상> 식민지 백성들에게 민족 정신을 고취시키기 위한 의도로, 역사적 사실을 작품에 투영시켜 현실 상황에 맞서 싸우는 저항 의지를 보여 주던 김동환도 일제의 탄압이 심해지자 ‘나라 찾기의 시’를 버리고 민요시로 전향하게 되는데, 그 대표적 작품이 바로 <송화강 뱃노래>이다. 김억, 김소월로 대표되는 기존의 민요시가 다분히 여성적 취향의 애틋한 정감을 갖는 데 반해, 김동환의 민요시는 강한 남성적 어투와 활달한 가락을 바탕으로 한 건강미를 특징으로 하고 있다. 이 시는 고국을 떠나 미지의 세계를 향
아임뉴스-우리가 언론이다. 시민 기자단! | 인천과 경기북부(의정부 양주 포천)에는 공통된 지명들이 많이 발견됩니다. 인천 옛지명이 매소현(買召縣)이라면 경기북부는 매성현(買省縣)입니다. 인천 남동구에 소래산과 소래포구가 있다면 경기북부에도 소래산(양주시 은현면 선암리)이 있습니다. 인천 강화도 건평리와 부천 소사구, 서울 마포 대흥동에 노고(老姑)산이 있다면, 재밌게도 경기북부 양주시 장흥면 삼하리, 의정부 녹양동 입석마을, 포천시 소흘읍 고모리에도 노고(老姑)산이 있습니다. 이런 지명의 일치가 단순한 우연의 일치일까요? 인천 남동구 만수동에 비루고개가 있다면 의정부 고산동과 남양주 별내면에 용암산을 사이에 두고 사이좋게 비루개가 각 각 자리하고 있죠. 두 지역은 왜? 이렇게 같은 지명들이 많이 나타나는 걸까요? 그리고 공통의 지명들은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는 걸까? 단적으로 말씀드리면 이 지명들은 모두 여제 소서노와 초기 백제의 역사와 깊은 관련이 있는 지명들이라는 겁니다. 우선 앞으로의 글 진행을 위하여 소서노와 관련된 공통지명들에 대한 내용을 간단 정리하여 제시해보겠습니다. <소서노 관련 지명 초간단 정리 7개 항목> ①매성현(買省縣), 매
아임뉴스-우리가 언론이다. 시민 기자단! | 우리 동이족의 역사에 살아있는 마고(麻姑)가 있었습니다. 하늘을 쪼개고 별들을 뿌려 세상을 창제한 신화 속의 마고(麻姑), 그녀와 동일시 될 정도로 막강한 권력을 가진 여인이 역사 속에 실존(實存) 하였던 것입니다. 그 여인은 과연 누구였을까요? 그 흔적을 찾아 연천 학곡리 돌마돌 마을의 전설을 만나러 떠나 보도록 하겠습니다. 이 전설에는 살아 있는 마고(麻姑)의 흔적을 찾을 수 있습니다. 이 글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앞뒤가 안 맞는 표현이 하나 나온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마귀할멈이 쌓은 돌무덤’인데 ‘마을사람들이 신성시’했다? 참 이상하죠? 앞뒤가 안 맞는 내용입니다. 그려. ‘신성시 했다’면 ‘마귀할멈’이 아니어야 하는 건데? 독자님들도 이상하다는 생각이 드시죠! 이 표현 안에는 굉장한 힌트가 들어 있습니다. 우리 한 번 이렇게 생각해 봅시다. 혹시 ‘마귀할멈’이라는 표현이 와전되었다면? ‘좋은할멈’인데 ‘마귀할멈’으로 와전되었다면? 그래야 ‘신성시 했다’라는 말과 앞뒤가 맞게 되는 거 아니겠습니까? 그럼 ‘마귀할멈’의 표현을 복원 시켜볼까요. ‘마귀할멈’=‘마고할멈’, 어때요. 많이 일치하죠! 아~하. 이
아임뉴스-우리가 언론이다. 시민 기자단! | “내 딸을 돌려주십시오.” 이 얼마나 간절한 표현입니까? “내 딸을 돌려주십시오.” 이 얼마나 피눈물 나는 표현입니까? 이 글은 청나라에 조선 사절단으로 간 금림군(錦林君) 이개윤(李愷胤)이 제3대 황제 순치제(順治帝)에게 올린 상소문(上疏文) 내용 중의 일부입니다. 전 날 상소문(上疏文)을 올리기 위해 글을 쓰는 금림군(錦林君) 이개윤(李愷胤)은 아마도 피(血)를 찍어 눈물에 새겨 한 자 한 자 써 내려갔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는 지금 절규하는 아버지의 마음을 담아 청황제 순치제(順治帝)에게 상소(上疏)하는 중입니다. “내 딸을 돌려주십시오.” "내가 만방(萬方)을 어루만져 기르느라 널리 사랑하는 데 마음을 두고 있으니 원래 내외(內外)를 구분함이 없고, 그대 나라는 대대로 번국(藩國)이라 칭하여 순종한 지 여러 해가 되었으니 지극한 정이 서로 연관되었으므로 또한 마땅히 살펴 돌볼 것이다. 조선의 신하인 금림군 이개윤(李愷胤)의 딸이 과부로 집에 살고 있으면서 부모 형제를 멀리 이별하였으니, 내가 측은하게 여긴 지 오래되었다. 또한 이 여인은 왕에게 이미 종친이 되고 또 어루만져 길렀으니, 왕이 늘 마음에 둠이
아임뉴스-우리가 언론이다. 시민 기자단! | '피휘(避諱)'라는 말이 있습니다. ‘문장에 선왕(先王)의 이름자나 중국의 연호자, 성인(聖人)이나 선조(先祖)들의 이름자가 나타나는 경우 공경과 삼가는 뜻을 표시하기 위하여 획의 일부를 생략하거나 뜻이 통하는 다른 글자로 대치하는 언어관습.’을 뜻합니다. 즉 '특정 인명이나 이름의 글자 쓰는 것을 꺼려 피하여 표기하는 방법'을 말하는 거죠. 태조 이성계의 예를 들어보면 조선 국왕으로 즉위한 후 이름을 일부러 ‘旦(아침 단)’으로 바꿉니다. 왜냐? 이름을 두 글자로 줄이고 어려운 글자를 사용하게 되면 사람들이 쉬운 글자를 선택할 수 있고 피휘할 글자가 많아지게 되기 때문입니다. 백성이 피휘를 씀에 불편을 최소화하려는 나름 위민정신(爲民情神)! 군주의 이름을 피하는 것을 국휘(國諱), 집안 조상의 이름을 피하는 것을 가휘(家諱), 성인의 이름을 피하는 것을 성인휘(聖人諱), 원수지간인 사람의 이름을 피하는 것을 원휘(怨諱)라고 합니다. 피휘에는 몇 가지 방법이 있는데요. 대자(代字)라고 해서 피할 글자를 소리가 같거나 비슷한 다른 글자로 대체해서 쓰는 방법. 결자(缺字)라고 해서 피할 글자를 쓰지 않고 공백으로 남겨
아임뉴스-우리가 언론이다. 시민 기자단! | 박근혜정부는 2015년 12월 28일 일본 정부가 사죄를 표명하고, 위안부 피해자 지원재단에 10억엔(약 107억원)을 출연하는 대신, 위안부 문제를 최종적·불가역적으로 해결했다고 인정하는 내용의 한일 당국의 합의를 피해당사자들과 사전 협의없이 비밀리에 진행하여 발표했다. 이에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와 가족을 대리해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은 2016년 3월 헌법소원을 냈다. 2019년 12월 30일 헌법재판소는 ’12·28합의가 위헌임을 확인해달라’며 낸 헌법소원 사건을 재판관 전원일치 의견으로 각하 결정했다. 현 정부에 이르기까지 위안부 문제는 해결의 실마리를 찾지 못하고 있다. 반면에 이를 해결하기 위해 앞장선 곳은 민간단체들이다. 1992년부터 일제강점기 당시 정신대 및 일본군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 중에 정의기억연대(옛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 소속 할머니들의 주도로 서울 종로구 중학동에 있는 주한일본대사관 앞에서 매주 수요일마다 일본측의 공식 사죄와 법적 배상을 촉구하는 항의 집회가 30년째 열리고 있다. 9월 7일에는 “제1560차 일본군 성노예 문제해결 위한 정기 수요시위”가 열렸다. 최근에는 이를 반
아임뉴스-우리가 언론이다. 시민 기자단! | 의정부 금오동 산45-20(산장 아파트 옆)에 있는 ‘의순공주의 묘(족두리 묘)’에 가보셨나요? 가보신 분들은 깜짝 놀라십니다. 이건 묘가 아니에요. 아무도 관리하지 않아 쥐가 파먹은 것 같은 모양을 한 묘를 보는 순간 마음의 바닥에서부터 화가 치밀어 올라오기 시작합니다. ‘왕도 못 한 조선 백성의 목숨을 구한 여인.’의 묘라고는 도저히 인정할 수 없는 관리 상태에 놀란 입을 닫을 수가 없죠. 그런데 말입니다! 더 놀라운 건 지금의 이 묘마저도 앞으로는 볼 수 없게 될 거라는 사실. 도시계획상 의순공주묘를 완벽하게 치고나가는 도로(道路)가 진행 중이니까요. 현재 이 도로는 의순공주 묘 앞 100m앞 까지 도달되어 있습니다. 바로 코앞까지 온 거죠. 나라를 구하였으나 살아서는 환향년이라 손가락질 당하고, 죽어서도 편히 쉴 공간조차 사라져야 하는 의순공주의 현 상황. 살아있는 우리가 의순공주를 두 번 죽이고 있는 겁니다. 지금. 문화관광과 공무원에게 물었습니다. “평소에 묘 관리도 안 되고, 새로 도로가 나면 의순공주묘가 사라진다는데 왜 그러는 겁니까?” “문화재로 지정되지 않아서 그래요.” “그럼 문화재로 지정을 해
아임뉴스-우리가 언론이다. 시민 기자단! | 내가 그날 그 골목에 들어섰던 때는 중3 시절이었습니다. 어스름한 저녁 빛이 깔린 골목에 들어설 즈음 날카로운 목소리가 내 귀에 꽂혔습니다. 그리고 사람들은 둥그렇게 모여 웅성웅성 대는 모습을 발견했죠. 무슨 일인가 보니 ‘양공주’ 누나의 머리에 피가 터져 철철 흐르는데, 머리채를 움켜잡은 미군 흑인 병사 놈은 누나를 계속 때리는 중이었습니다. 이런 난리굿을 치는데 아무도 말리려고 나서는 사람이 없더라고요. 가만히 보니 그 누나는 미군부대 PX에서 사온 물건을 저녁이면 우리 집에 팔러오는 낯익은 누나 중 한 명이었습니다. 그래서 나는 다리를 높게 들어 양키의 허벅지를 발꿈치로 냅다 찍었고 간신히 누나의 퇴로를 만들어 줄 수 있었죠. “누나. 어서 빨리 도망가세요.” 그때서야 사람들은 “병원.” “앰블란스.”를 외쳐댔습니다. 허벅지를 붙들고 일어선 양키는 겁에 질려 “쏘리, 쏘리”를 외쳤고 상황을 종료 시킨 나는 즐거운 마음으로 집을 향해 걸어가고 있었죠. “동명이 네가 왜 나서? 어디 다치기라도 하면 어쩌려고.” “그럼. 누나들이 맞는 데 가만있어요?” “쟤네들이 무슨 인간이냐? 저것들 맞아도 싼 년들이야.” “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