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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일반

북부여(BCE239~BCE58)

아임뉴스-우리가 언론이다. 시민 기자단! |

 

북부여(BCE239~BCE58)

1. 고조선 마지막 단군 고열가

고조선은 ①변한(불조선-베이징, 산동반도) ②진한(진조선-하얼빈, 백두산) ③마한(말조선-요양, 난하 임금성)으로 나눠 다스려졌다. 진한의 대단군은 수도인 백악산(하얼빈, 이후 훈춘 천도)에 있으면서 변한과 마한을 거느렸다.

 


46대 단군 보을때인 BCE296년, 한개의 난을 고열가가 진압하고, 보을 사후, 47대 단군이 되지만 건융, 북막 등이 독립을 선언하며 고조선의 권위가 땅에 떨어지자 BCE238년 단군직을 버리고 도를 닦는다며 산으로 훌쩍 들어가버렸다. 이로서 고조선 2096년 역사가 끝난다.

 

 

2. 북부여를 세운 해모수

북만주 비류호 북쪽에 기마족 고구려(가우리)인들이 살았다. 해모수는 고열가 단군 때 23세의 나이로 군대를 일으켰고, 8년째인 BCE230년, 백악산 아사달에서 제사를 지내고 대단군이 되었다.. 해씨를 중심으로 나라의 주요관리들을 대거 바꾸고, 오가의 욕살 등 중앙 세력들을 마한, 한반도 지역으로 내려보냈다.

BCE206년, 동생 고진이 구려하(현 요하)를 건너 서안평까지 나아가 그동안 잃었던 변한(불조선) 북부영지를 되찾으니, 해모수가 그를 고구려 왕으로 봉한다. 그가 동명왕!!

3. 강도 위만

BCE194년, 한고조 유방 사후, 유방의 친구였던 노관과 그의 신하 위만이 도망자 신세가 되어 기자조선(현 요양)으로 도망친다. 난하 임금성에 있던 마한조선의 태자 기준왕이 위만 일행을 받아줘 기자조선-연나라 사이 100리 빈 땅에서 살게 해주었으나 오히려 기준왕을 급습하고 기자조선을 차지한다. 마한단군은 황급히 도망하여 남평양(지금의 평안도 평양)으로 피신한다.

 

 

해모수가 BCE195년에 죽자, 태자 모수리(BCE195~BCE170)가 왕위를 이어받아 북부여의 2번째 통치자가 됨.. 연타발 장군이 위만군을 서요하에서 막아내고 그곳에 낭부(낙랑국)를 설치하고 최씨를 임명해 다스리게 한다. 낙랑왕 최씨는 옛 기자조선 열국들(25국)을 제후국으로 받아들인다. 위만조선(BCE195~BCE108)또 조공을 바치며 제후국을 자처했다...

 


4. 한무제 vs 고두막왕(승)

BCE170년 고해사, BCE121년 고우루(BCE121~BCE86)가 이어간다. BCE108년, 서요하 북쪽의 고구려왕 고두막왕(동명왕 고진의 손자)은 위만 조선을 해체시키고 한4군을 두려는 한무제를 공격!! 협, 음, 참 장군과 낙랑의 장군 최의 군단을 편입해 19회의 혈투 끝에 승리!! 동방원정에 실패한 한나라 장군(양복, 순체, 위산, 공손수)들은 모두 한무제에 의해 기시형(목을 베고, 시체를 길거리에 버리는 형벌)에 처해졌다.. 승리한 고두막왕은 위만조선 영지를 쪼개어 낙랑에 편입시키고 협 장군을 대방국(임둔) 왕으로, 참 장군을 현도의 왕으로, 음 장군을 진번(추저 땅)의 왕으로, 최 장군을 낙랑의 대장군(날양의 왕)으로 삼았다.

 

 

고두막왕(BCE108~BCE60)은 해모수의 북부여와 동명왕의 고구려를 합해 졸본부여를 세운다. BCE87년, 북부여 고우루를 훈춘으로 쫓아낸 뒤, 백악산 아사달에서 단군 자리에 오른다. 고우루는 훈춘에서 동부여를 이루지만 이듬해 죽고, 동생 해부루가 뒤를 잇는다.

 

 

5. 주몽 출생


51세의 고두막 단군은 동부여의 영지 강가에서 야영을 하다가 강에서 목욕중인 비서갑 용왕(큰 강을 관리하는 장관) 하백의 딸 유화와 하룻밤을 보낸다. 성난 아비 하백으로부터 버림받은 유화는 동부여 금와왕(해부루)에게 갔고, BCE79년 아들 주몽을 낳는다. BCE59년 고두막이 죽고 고무서가 북부여의 6번째 단군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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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고구려

고무서단군 2년째 해모수의 직계 후손 고주몽이 오이, 마리, 협보, 부분노, 부위압, 극재사 등 무리와 함께 졸본부여(비류호)로 와 고구려의 독립을 선포하며 연호를 '다물'이라 하였다(BCE58). 비류국 송양의 딸 소서노와의 결혼은 주몽의 고구려에게 날개를 달아준 격!! 고무서가 갑자기 죽자, 주몽은 무방비 상태의 백악산 아사달을 접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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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위압의 동부여 정벌, 부분노의 비류국 정벌(소서노父 송양 죽임), 오이의 행인국 정벌, 마리의 흉노축출, 협보의 부여잔군 소탕으로 고구려 7백년 역사를 활짝 열어젖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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