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5.04 (토)

  • 흐림동두천 1.0℃
  • 흐림강릉 1.3℃
  • 서울 3.2℃
  • 대전 3.3℃
  • 대구 6.8℃
  • 울산 6.6℃
  • 광주 8.3℃
  • 부산 7.7℃
  • 흐림고창 6.7℃
  • 흐림제주 10.7℃
  • 흐림강화 2.2℃
  • 흐림보은 3.2℃
  • 흐림금산 4.4℃
  • 흐림강진군 8.7℃
  • 흐림경주시 6.7℃
  • 흐림거제 8.0℃
기상청 제공

<동학논단> 동학이 꿈꾸는 세상

아임뉴스-우리가 언론이다. 시민 기자단! |

 

        임형진(경희대 교수, 동학학회 회장)

 

 

 19세기 중반 경주의 몰락한 영반가의 수운 최제우에 의해 창도된 동학은 안으로는 탐관오리들의 가렴주구와 밖으로는 서세동점의 혼란 속에서 도탄에 빠진 백성을 구하고 개벽된 세상을 향해 나가야 함을 역설한 우리 민족 고유의 사상이자 민족종교였다. 수운 최제우는 차별적인 신분제를 벗어나기 위해 모든 사람은 하늘을 모시고(시천주) 있는 세상에서 가장 귀한 존재임을 주장하고 그것을 실천하였다. 그러나 오직 성리학만이 유일 가치이자 학문이었던 시대에 수운은 곧 좌도난정의 죄목으로 처형되었다.

 

 이제 동학의 불씨를 꺼트리지 않고 만천하에 퍼트릴 임무는 2세 교주인 해월 최시형의 몫이 되었다. 36년이라는 오랜 기간동안 관의 체포령을 피해 전국을 숨어다닌 최보따리 해월은 몸소 실천하는 것으로 모든 백성은 평등하고 귀중한 존재임을 자각시켰고 나아가 만천하의 모든 것에는 생명이 담겨있다는 물물천 사사천(物物天 事事天)의 이념을 제시하였다.

 

 해월 최시형의 노력으로 전국에 확산된 동학은 1894년 동학혁명을 일으켰다. 백성의 입장에서 나라를 구할 보국안민의 방책이 동학이라고 본 것이다. 그리고 척양척왜와 제폭구민의 이상사회 즉 개벽의 새로운 세상을 목표한 혁명이었다. 비록 우세한 무기를 앞세운 일본군과 관군에 패퇴하여 혁명은 좌절되었지만 그들이 품었던 이상은 영원히 남아 후세의 과제가 되었다.

 

 특히 유일하게 살아남은 혁명의 지도자인 의암 손병희는 동학의 도통을 전수받아 3세 교주가 되어 동학을 천도교로 개칭하고 제2의 동학혁명을 꿈꾸었다. 그것이 1919년의 3.1운동이었다. 3.1운동에는 동학혁명의 실패를 반면교사 삼아 혼자하는 혁명이 아닌 더불어함께 하는 혁명으로 만들었다. 종교연합으로 탄생한 3.1운동이 그것이었다. 3.1정신이 지금도 우리들에게 많은 교훈을 주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고 본다.

 

 동학은 다른 종교와는 달리 내세가 아니라 현세를 중시하는 사상적 특징을 지닌다. 동학은 후천개벽(後天開闢)의 세상을 꿈꾼다. 개벽의 세상은 자기의 사사로운 마음만을 위하는 ‘각자위심(各自爲心)’의 시대가 아니라 모두가 다른 마음을 이겨내고 한 몸이 되는 ‘동귀일체(同歸一體)’의 새 시대가 될 것임을 확신하고 있다.

 

각자위심이 아닌 동귀일체의 세상은 여러 분야에 적용될 수 있다. 물질만능의 시대에 인간중심의 생명사상으로, 자연 생태계의 파괴에 대한 환경보호사상으로, 차별과 배제에서 동의와 함께의 사회로, 분열과 대립이 아닌 통합과 조화 그리고 분단극복의 통일이념으로까지 승화될 수 있다. 동학이 꿈꾸는 그런 세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