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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일반

고리KOREA(고구리)는 독자 년호를 쓴 천제지자국

다물(多勿/東明), 유리광명(琉璃光明), 대무(大武), 융무(隆武), 연수(延壽), 영락(永樂), 건흥(建興), 명치(明治), 연가(延嘉), 영강(永康), 대덕(大德), 홍무(弘武), 함통(咸通), 개화(開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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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리KOREA(고구리)는 독자 년호를 쓴 천자국 

독자적 년호를 쓰면 '천자국'(天子國 황제의 나라)이라고 한다.

그리고 천자의 죽음을 무덤비문에 '붕어(崩御)'라고 적는다.

고구리는 장수호태왕 이후 공식국호가 선조들의 나라이름이었던 '고리(高麗)'였고,

왕들을 '태왕(太王)'이라 불렀다.

러시아 모스코바 국립도서관에 있던

요나라 제천행사를 기록한 <요천제 – 고리황제품위(高麗皇帝品位)>

청나라 제천행사를 기록한 <만주대제 – 고리대제의예(高麗大祭儀禮)>라는 책들이

세상의 눈길을 끌게 되면서, 요나라 태종(야율요골=야율덕광 926~947)과

청나라 강희제(애신각라 현엽玄燁=히오완예이 1661~1722)에 의해 추증된

고구리 태왕들의 년호 및 묘호가 밝혀져 학계의 눈길을 끌고 있다.

특히 아래 고구리 태왕들의 년호자료가 증명하듯이

식민사관과 동북공정에 찌들어 있는 강단사학계에서 위서(僞書)라고 말하는

<환단고기 태백일사 고구리국본기>에 기록된 고구리 태왕들의 년호와 정확히 일치하고 있는 바,

지금까지 중국, 지나국가 지방정권이라 비하매도한 고구리 역사 논리는 폐기되어야 할 것이다.

위 책에 따르면. 

고구리 시조 추모대제의 년호인 다물(多勿),

6대 태조대왕의 년호 융무(隆武),

최전성기인 19대 광개토호태왕의 년호 영락(永樂),

20대 장수호태왕의 년호 건흥(建興),

21대 문자명태왕의 년호 명치(明治),

25대 평원태왕의 년호 대덕(大德),

26대 영양태왕의 년호 홍무(弘武),

28대 보장태왕의 년호 개화(開化) 등

 

8명의 태왕들의 년호가 <환단고기>와 정확히 일치한다.

또한 <환단고기>에는 언급되어 있지 않지만,

16대 고국원태왕의 년호 연수(延壽), 23대 안원태왕의 년호 연가(延嘉), 24대 양원태왕의 년호 영강(永康), 27대 영류태왕의 년호 함통(咸通) 등 4명의 태왕들의 년호가 언급되어 있다.

아울러 고구리 태왕들에게 요나라 태종(926~947)이 시호를 올렸고

청나라 강희제(1661~1722)가 묘호를 추존한 것은

요나라(거란)과 청나라(여진)가 스스로를 고구리의 후예로 자리매김하고, 이러한 추존의식을 통해 요나라와 청나라가 위대한 대제국 고구리의 정통성을 이어 받은 나라라는 것을 만천하에 선포한 것이다.

고구리는 독자적 년호를 사용한 천자국이라는 얘기이며, 지금까지 중국 지나국의 역사왜곡인 동북공정의 핵심인 ‘고구리는 중국의 지방정권’이라는 논리는 완전히 파쇄(破碎)된다. 아울러 <환단고기>를 위서라고 말하고 있는 한국 식민사학계의 엉터리 역사이론도 이제 역사의 뒤안길로 보내드려야 한다.

거란(코리-안)족이 세운 요나라의 제천행사인 '요천'과

청나라의 제천행사인 '만주대제'를 할 때, 그들은 고구리 태왕들에게도 제사를 올렸다.

이는 요나라가 대진국(고리)을 무너뜨린 후 고구리를 계승한 대진국의 황족들을 받아들여 고구리의 정통성을 이어가고자 고구리 태왕들을 황제로 추증한 것이고,

청나라도 마찬가지로 고구리를 이어받았음을 선포하기 위해 조와 종을 붙여 묘호를 추증하고 제사를 올린 것이다.


 

 

 

<요천제 – 高麗皇帝品位)>와 <만주대제 – 高麗大祭儀禮> 자료

1대 고주몽(高朱蒙)=동명성왕=다물왕(多勿王)=추모성왕(鄒牟大帝),

년호: 다물(多勿/東明), BC37-BC19년
- 동명대제(東明大帝) : 요나라 태종(야율덕광)이 중국황제시호로 추증
- 추모대동명광현고황제 (鄒牟大東明光賢高皇帝) & 고조(高祖) : 청나라 성조(강희제)에 의해 시호, 묘호 추증

2대 고유리(高類利)=유리명왕(榴璃明王), 년호: 琉璃光明, BC19-AD28년
​- 유류명효문태황제(儒留明孝文太皇帝) : 요태종, 시호 추존
- 묘호 태종(太宗) : 강희제, 묘호 추존

3대 고무휼(高無恤)=대무신왕(大武神王), 년호: 대무(大武), 28-64년
​- 대주류천효명세태황제(大朱留天孝明世太皇帝) : 요태종, 시호 추존
- 묘호 세종(世宗) : 강희제, 묘호 추존

4대 고색주(高色朱)=민중왕(閔中王), 64-68년
- 가천덕광무민중무황제 (可天德光武閔中武皇帝) : 요태종, 시호 추존
- 묘호 중종(中宗) : 강희제, 묘호 추존

5대 고우(高憂)=모본왕(慕本王), 68-73년
- 동광현무정모본덕황제 (東光賢武定慕本德皇帝) : 요태종, 시호 추존
- 묘호 덕종(德宗) : 강희제, 묘호 추존
※고재사(高再思)=신명선태왕(國祖仙皇→신명선제神明仙帝 73~112)

6대 고궁(高宮)=태조대왕(太祖大王)=국조왕(國祖王)=융무대왕(隆武大王),

년호: 융무(隆武), 112~146년
- 국조대태조성무황제 (國祖大太祖聖武皇帝) : 요태종, 시호 추존
- 묘호 세조(世祖) : 강희제, 묘호 추존
​​
7대 고수성(高遂成)=차대왕(次大王), 146~165년
- 공무현혜차대태황제(恭武玄慧次大太皇帝) : 요태종, 시호 추존
- 묘호 현종(賢宗) : 강희제, 묘호 추존

8대 고백고(高伯固)=신대왕(新大王) , 165-179년
- 태강상무현신대황제(太康上武顯新大皇帝) : 요태종, 시호 추존
- 묘호 인종(仁宗) : 강희제, 묘호 추존

9대 고남무(高南武)=고국천왕(故國川王), 179-197년

- 세무국현천호태황제(世武國賢天浩太皇帝) : 요태종, 시호 추존
- 묘호 문종(文宗) : 강희제, 묘호 추존

10대 고연우(高延優)=산상왕(山上王), 197-227년
- 호상대위산상문황제 (浩上大威山上文皇帝) : 요태종, 시호 추존
- 묘호 예조(睿祖) : 강희제, 묘호 추존

11대 고우위거(高憂位居)=동천왕(東川王), 227-248년
- 현무천세동양태황제 (現武天世東襄太皇帝) : 요태종, 시호 추존
- 묘호 명종(明宗) : 강희제, 묘호 추존

12대 고연불(高然弗)=중천왕(中川王)=중양왕(中襄王), 248-270년
- 천호성세중양태황제 (天鎬成世中襄太皇帝) : 요태종, 시호 추존
- 묘호 영종(英宗) : 강희제, 묘호 추존

13대 고약로(高藥盧)=서천왕(西川王)=서양왕(西襄王), 270-292년
- 성문현중천서양태황제 (成文玄中天西襄太皇帝) : 요태종, 시호 추존
- 묘호 정종(正宗) : 강희제, 묘호 추존

14대 고상부(高相夫)=봉상왕(烽上王), 292-300년

- 주혜의문상국수무황제 (柱慧議文上國殊武皇帝) : 요태종, 시호 추존
- 묘호 영종(永宗) : 강희제, 묘호 추존

15대 고을불(高乙弗)=미천왕(美川王)=호양왕(好壤王), 300-331년
- 영성태문호양황제 (英成太文好壤皇帝) : 요태종, 시호 추존
- 묘호 고종 (高宗) : 강희제, 묘호 추존

​16대 고사유(高斯由)=고국원왕(故國原王)=국강상왕(國岡上王)=소열제(昭列帝)=연수왕(延壽王),

년호: 연수(延壽), 331-371년
- 국강상대소열무황제 (國岡上大昭列武皇帝) : 요태종, 시호 추존
- 묘호 신종(新宗) : 강희제, 묘호 추존

17대 고구부(高丘夫)=소수림왕(小獸林王)=소해주류왕(小解朱留王), 371-384년
- 소해주류대천황제(小解朱留大天皇帝) : 요태종, 시호 추존
- 묘호 소종(昭宗) : 강희제, 묘호 추존

18대 고이련(高伊連)=고국양왕(故國壤王), 384-391년
- 국양상지목현태황제 (國壤上持牧賢太皇帝) : 요태종, 시호 추존
- 묘호 목종(穆宗) : 강희제, 묘호 추존

19대 고담덕(高談德)=국강상광개토경평안호태왕(國岡上廣開土境平安好太王)=영락제(永樂帝),

년호: 영락(永樂), 391-414년​
- 국강상광개토경평안영락호태황제 (國岡上廣開土境平安永樂好太皇帝) : 요태종, 시호 추존
- 묘호 성조(聖祖) : 강희제, 묘호 추존

20대 고거련(高巨連)=건흥대제(建興大帝),

년호: 건흥(建興), 414-491년
- 장수홍제호태열황제(長壽弘濟好太烈皇帝) : 요태종, 시호 추존
- 묘호 숙종(肅宗) : 강희제, 묘호 추존

21대 고나운(高羅雲)=명치대제(明治大帝)=문자명태왕,

년호: 명치(明治), 491-519년​
- 문자명성치호태황제(文咨明成治好太皇帝) : 요태종, 시호 추존
- 묘호 성종(成宗) : 강희제, 묘호 추존

22대 고흥안(高興安)=안장태왕, 년호: 안장(安藏), 519-531년
​- 안장고보홍현황제(安臧高寶洪現皇帝) : 요태종, 시호 추존
- 묘호 진종(晉宗) : 강희제, 묘호 추존

23대 고보연(高寶延)=안원태왕=연가제(延嘉帝),

년호: 연가(延嘉), 531-545년,
- 안원세영연가황제(安原世英延嘉皇帝) : 요태종, 시호 추존
- 묘호 선종(宣宗) : 강희제, 묘호 추존

24대 고평성(高平成)=양원황제(陽元皇帝)=영강제(永康帝),

년호: 영강(永康), 545-559년
- 양강상호원무황제(陽崗上好元武皇帝) : 요태종, 시호 추존
- 묘호 원종(原宗) : 강희제, 묘호 추존

25대 고양성(高陽城)=평원황제(平原皇帝)=대덕제(大德帝),

년호: 대덕(大德), 559-590년
- 평강상대덕호황제(平崗上大德好皇帝) : 요태종, 시호 추존
- 묘호 평종(平宗) : 강희제, 묘호 추존

26대 고원(高元)=영양호태왕=홍무대제(弘武大帝),

년호: 홍무(弘武), 590-618년​
- 영양문효무원호태황제(瓔陽文孝武元好太皇帝) : 요태종, 시호 추존
- 묘호 효종(孝宗) : 강희제, 묘호 추존

27대 고건무(高建武)=영류황제(榮留皇帝)=함통제(咸通帝),

년호: 함통(咸通), 618-642년​
- 영류무장태혜천황제(榮留武張太惠天皇帝) : 요태종, 시호 추존
- 묘호 헌종(憲宗) : 강희제, 묘호 추존

28대 고장(高臧)=보장황제(寶臧皇帝)=개화제(開化帝),

년호: 개화(開化), 642-668년
- 개원현수대화보장황제(開原賢秀大化寶臧皇帝) : 요태종, 시호 추존
- 묘호 희종(嬉宗) : 강희제, 묘호 추존


광개토호태왕은 391년 18세의 나이로 즉위해 세상을 뜰 때까지

단군조선의 홍익정신과 고토회복이라는 고추모 개국성제의 다물국시를 실현하기 위하여

20여년간 활발한 정복활동을 전개했다.
광개토호태왕 때 고구리영토를 보면 북으로 점령한 북부여(현 바이칼호 부리야트) 지역에 고구리군이 있었고, 동으로 오호츠크해, 서로는 돈황과 우즈베키스탄에 이르렀고, 남으로는 대륙남부의 하이난섬과 홍콩 지역(당시 안라, 다라), 대만(당시 가라)까지 복속시켜 실로 광대한 영토를 확보했다. 초원무역과 해양무역을 장악했다.

① 동 : BC28 북옥저 멸망 복속, AD56년 동옥저 멸망 복속. 옥저=오호츠크(해)!
② 서 : '토곡혼(토욕혼)' 정벌! 구글맵으로 돈황 근처 인증! 돈황석굴에서 고구리벽화! 우즈베키스탄에서 고구리사신도!
③ 남 : '임나, 가라' 점령! 임라의 10국 중 안라국, 다라국이 있다. 안라=하이난섬, 다라=홍콘근처, 가라=대만(중국 16세기 지도)
④ 북 : 북부여에 군대주둔하고 점령! 부여=부뤼=부뤼족(부뤼야트)! 바이칼호 부뤼야트 자치공화국이 현존! DNA도 같고, 외모도 같고, '아바이(아버지)' 등 낱말 유사성! 부뤼야트 내 고리 일파(Khori)가 있다.

 


광개토호태왕은 직접 군사를 이끌고 원정에 참여한 야전 지휘관형 군주였다. 그는 백제와의 대부분의 전투를 직접 지휘했다. 즉위 직후인 392년(영락2) 황하(한수)의 백제 요새 관미성을 함락시켰다. 396년(영락6)에는 백제의 황하를 넘어 한성마저 포위하자 백제 아신왕은 항복하고 남녀 1000명과 세포 1000필을 내며 청화(請和)를 요청했다. 태왕은 이를 받아들여 항복조건으로 58성 700개 촌락을 얻고, 장수들, 백제 왕의 동생, 대신 10명을 데리고 함께 군사를 돌려 고구리 도성으로 돌아왔다.

얻은 성들은 다음과 같다. 구모로성臼模盧城, 각모로성各模盧城, 여한궁리성餘韓弓利城, 이성利城, 각미성閣彌城, 모노성牟盧城 , 미사성彌沙城, 고사오성古舍烏城, 아단성阿旦城, 고리성古利城, 곤초성困草城, 잡미성雜彌城, 오리성奧利城, 구모성勾牟城, 고수용성古須龍城, 라성羅城, 부산성負山城, 미성味城, 가고룡나성家古龍羅城, 양성楊城, 취곡성就谷城, 우산성禹山城, 사수성沙水城, 고팔선성古八船城, 용리조성龍利朝城, 야리성也利城, 대산한성大山韓城, 순여성順如城, 수팔노성數八奴城, 보여성輔呂城, 농매성農賣城, 신성新城, 여성餘城, 백성栢城, 세성細城, 가안성佳晏城, 미류성彌流城, 소각성蘇刻城, 한미성韓美城, 석지리성析支利城, 암문성巖門城, 고림성古林城, 성안성盛晏城, 안리성晏利城, 남소성南蘇城, 취추성就鄒城, 노리성奴利城, 인성忍城, 나단성那旦城, 용성容城, 윤노성閏奴城, 채창성彩滄城, 경사획성炅舍獲城 , 교성交城, 압본성鴨本城, 구부성仇夫城, 두노성豆奴城, 기국성其國城..


그러나 399년(영락9), 백제가 약속한 맹서를 어기고(違誓) 왜를 끌어들여 내통하였다.

400년(영락10) 태왕이 보병과 기병 5만을 보내어 신라를 구하러 가도록 명하였다.

남거성(男居城)부터 신라성(新羅城)까지 가득찬 왜倭를 쫓아내면서 임나(任那/古龍?)에 도착했다.

주강(珠江 & 長江) 아래에 해양무역 요충지를 일컫는 임나(任那)가 있다.

임나에는 가라加羅, 다라多羅, 안라安羅 등이 포함된다(지명 현존)
고구리군 휘하에 가라(加羅 현 대만섬)도 뒤따랐고, 고구리군은 다시 찾은 성(城卽)을 안라사람(安羅人)들로 하여금 지키게 한 뒤(戍兵), 신라성(新羅城)과 염성(鹽城)을 공격하여 왜구를 궤멸시켰다.

 

404년(영락14) 백제가 왜와 함께 동맹군을 꾸려 다시 침입하자 태왕은 군대를 이끌고 평양을 출발하여 완전히 섬멸해 버렸다. 왜와 도적들은 궤멸하고 참패하므로 참살한 수를 헤아릴 수 없었다. 이로써 온누리는 그야말로 팍스 고구리아나(고구리 중심의 질서)가 되었다.


407년(영락17), 태왕이 교칙을 보내(敎遣) 보병과 기병 5만으로 왜의 도적들을 쓸어 없애라 하였다.

관병들이 뒤를 추격하여 태왕의 군사는 사방으로 포위하는 작전을 썼다. 목을 베고 매질하여 참살하였다. 노획한 갑옷(鎧鉀 개갑)이 1만령이 넘었고 군비자금과 병기계는 수를 셀 수 없었다.

410년(영락20), 동부여는 옛날부터 이곳 추모왕의 같은 백성(屬民)이었으나 중도에 배반하여 조공하지 않으므로 태왕이 몸소 지휘하여 토벌하러갔는데, 부여성 입구에서부터 모두 나와서 엎드려 국빈으로 맞이하여 거듭 절하므로 태왕은 괘씸했던 지난 나쁜 일을 모두 잊고 크게 사면하고 용서하여 주었다.


400년경 후연(태원땅) 정벌에 나서, 말갈.거란과 합세하여 후연을 궤멸시켰다. 귀화한 후연관리 진으로 하여금 유주자사를 맡게 하였다.  

 

 

 

​​단군조선(부여)의 정통 계승국이라는 당찬 기상으로 내외의 모든 불의한 세력과 대적한 나라들을 물리치고 홀로 우뚝 선 고구리의 강인함과 자존감이 자랑스럽지 않은가? 고구리 중심의 공존노선(다 함께 잘 살자)의 광개토호태왕의 나라 전략이야말로 대한민국이 가져야 할 민족비젼 청사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