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임뉴스-우리가 언론이다. 시민 기자단! | (1편에 이어서 계속) 11. 645년(개화4) 이세민의 침략전쟁 신채호 선생의 『조선상고사』내용을 중심으로 이세민(당태종)의 침입과 대막리지 연개소문의 대응을 살펴보자. 644년(개화3) 11월 이세민은 형부상서 장량(張亮)을 평양도행군대총관으로 삼아 4만을 거느리고 평양(현 안평)으로 가게 하고, 방효태는 4만을 거느리고 물길로 떠나게 하였다. 또 이세적(李世勣=이적)을 요동도행군대총관으로 삼아 6만을 거느리고 요동(현 좌권현)으로 가게 했다. 장량의 부대와 유주(幽州)에서 합류케 하였다. 이세민은 친위군 20만을 거느리고 뒤따른다. 연개소문은 건안·안시성 등 몇몇 성만 지키고 나머지는 곡식과 사료를 치우거나 불태워 적이 약탈할 것이 없게 하였다. 오골성(烏骨城)을 방어선으로 삼고 용맹한 장수와 대규모 병력을 배치하였다. 안시성주 양만춘과 오골성주 추정국에게는 별도로 은밀한 계책을 내렸다. “당나라 군은 군량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소·말·양을 많이 가져왔으나 겨울에 무엇으로 짐승들을 먹이겠소? 그러니 속전속결로 나와 안시성을 먼저 칠 것이오. 양공(양만춘장군)은 성을 지키다가 저들이 굶주릴 때 공격을 개시하고
베이징을 휘어잡은 고구려 연개소문, 당태종을 떨게하다 1 1. 어릴 적 고구려 연개소문은 일명 '개금(蓋金)'이라고도 한다. 성은 연(淵)씨요, 그의 선조는 봉성鳳城 사람이다. 아버지=태조太祚, 할아버지=자유子遊, 증조부=광廣으로, 모두 막리지莫離支를 지냈다. 603년(홍무14) 5월 10일 서부 대인이자 대대로인 연태조太祚의 아들로 태어났다. 나이 9살(611년)에 조의선인에 뽑혔는데 풍채가 우람하고 기개가 빼어났다. 늘 자신의 군사들과 함께 섶에 누워 잠자며, 손수 표주박으로 물을 떠 마셨다. 무리와 잘 어울리면서도 스스로의 힘을 다하였으니, 혼란한 속에서도 작은 것을 다 구별해내고, 상을 받으면 반드시 나누어 주고, 정성과 믿음으로 두루 보살폈으며, 마음을 미루어 이해하고 참아두는 아량이 있다. 땅을 씨줄緯로 하고 하늘을 날줄經로 하는 재주에 사람들은 모두 감복하여 한 사람도 딴 마음을 갖는 자가 없었다. 그러나 법을 쓰는데 있어서는 엄명으로 귀천이 없이 똑같았으니 만약에 법을 어기는 자 있으면 하나같이 용서함이 없었다. 큰 어려움을 만난다 해도 조금도 마음에 동요가 없었으니, 당나라 사신과 말을 나눔에 있어서도 역시 뜻을 굽히는 일이 없었고, 항상